떡밥위키
최근 변경
최근 토론
특수 기능
파일 올리기
작성이 필요한 문서
고립된 문서
고립된 분류
분류가 되지 않은 문서
편집된 지 오래된 문서
내용이 짧은 문서
내용이 긴 문서
차단 내역
RandomPage
라이선스
IP 사용자
216.73.216.107
설정
다크 모드로 전환
로그인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r1 문단 편집)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부정적인 영향 == 마르크스의 학문적 업적과 별개로 마르크스의 종교에 대한 관점은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종교인들이 희생된 원인을 제공하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들과 종파들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종교를 싸잡아서 인민들을 현혹시킨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평범한 종교인이나 인민들마저 마구잡이로 학살한'''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의 [[전쟁 범죄]]급 추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물론 자발적으로 독재 정권이나 기득권층과 협력한 종교인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련]]도 매우 악랄한 탄압과 학살을 일삼았는데 [[러시아 혁명]]이 갓 일어난 [[1918년]]에만 1만 2천여 명에 달하는 사제들이 공산 정권에 의해 학살당했으며 전쟁 전 5만 5천여 개에 달하던 교회들은 지속적으로 파괴되거나 탄압당한 끝에 문을 닫아 [[1927년]]에는 2만 9천여 개로 줄어들었고 1939년에는 겨우 200~300여 개의 교회만이 살아남았다.[* Davis, Nathaniel. “The Russian Orthodox Church: Opportunity and Trouble.” Communist and Post-Communist Studies 29, no. 3 (1996)] 최종적으로 소련이 완전히 무너진 1990년대에는 대성당들을 빼면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존재해온 유서 깊은 교회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물론 [[러시아 제국]] 시절에 인민들을 착취하는 사제들도 존재했고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 편을 든 사제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것도 [[스페인 내전]] 때처럼 [[볼셰비키]]들이 공개적으로 교회를 비난하고 탄압해 대니 자업자득이었다. 사제들도 전부 반동 귀족들 편만 든 게 아니라서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같은 [[자유주의]] 세력과 협력한 사제들도 있었다.] 하나 교회 차원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일은 없었다. 당시 총대주교였던 티혼은 백군 측을 축복하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교회 조직의 정치적인 중립을 지킬 것을 명령했으며 내전 당시 [[볼셰비키]]의 종교인 학살 절대 다수는 적군 측을 상대로 싸우기는커녕 아무런 편도 안 들거나 단순히 백군 측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사제, 그리고 그들의 무고한 가족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Dimitry V. Pospielovsky. A History of Soviet Atheism in Theory, and Practice, and the Believer, vol 1: A History of Marxist-Leninist Atheism and Soviet Anti-Religious Policies, St Martin's Press, New York (1987)] 아무리 험난한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의견 표명을 한 사제들이나 그들의 무고한 가족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만행을 절대 계급 투쟁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소련 정부의 종교계 탄압은 내전 이후에도 꾸준하게 유지되었는데 이때쯤이면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제국]] 시절에 누렸던 모든 특권과 재산을 상실한 상태였뎐 데다 살아남기 위해 공산 정부에 어느 정도 협력까지 하면서 싹싹 빌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1917년과 1935년 사이의 기간 동안 9만 5천여 명에 달하는 사제들과 수녀들이 학살당했고 탄압이 절정에 달했던 1937년~1941년에는 무려 10만여 명이 총살되었다. 마르크스의 발언을 자기식으로 해석한 [[레닌]]과 그의 후계자들은 단순히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종교인을 탄압하는 것을 넘어 '''종교 자체를 절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John Anderson, Religion, State and Politics in the Soviet Union and Successor Stat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이를 일방적인 학살이나 제노사이드가 아닌 단순한 계급 투쟁의 결과로 보는 것은 악의적인 왜곡에 불과하다. [[독소전쟁|독소 전쟁]] 이후 스탈린이 종교 탄압을 크게 완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탄압은 미약하게나마 존재했다. 하나 흐루쇼프 시기에 정교회를 상대로 한 탄압이 다시 증가해서 2만 2천여 개로 늘어났던 교회들의 숫자는 다시 7,000여 개로 줄어들었다. 사제들은 다시 수용소에 갇히거나 정신병자로 몰려 수감되었으며 정교회 신자들은 진급과 봉급 등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다. 동독,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등에서는 표면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막으려고 했던 성차별, 인종 차별, 민족 차별과는 다르게 종교인들은 조직적인 차별을 받았고 정부가 직접 종교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을 주도했다. 급진적인 무신론, 반종교 이념은 비단 현실 사회주의권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아나키즘]] 세력도 역사적으로 공유해 왔다.[* 다만 아나키즘의 역사에서 톨스토이, 엘륄 등의 기독교 아나키즘도 중요한 조류이기 때문에 아나키즘이 반드시 무신론, 반종교 혹은 반신론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제2공화국]]은 오히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아나키스트 민병대들이 가톨릭교회 방화, 성직자 학살에 열을 올린 반면 대외적인 이미지도 신경써야 되는 집권 여당이었던 사회 노동당 정부가 오히려 자제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현실 공산권은 기본적으로 종교 탄압 정책을 일반적으로 밀었지만 정치적 필요나 여건에 따라 오히려 완급 조절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소련마저도 [[제2차 세계 대전]] 같은 격동기를 거치면서 정교회에 대한 박해를 완화할 수밖에 없었고 독소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제3세계]]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와중에는 이슬람 박해를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 [[북베트남]] 정권은 [[베트콩]] 시절부터 [[남베트남]]의 반체제 운동에 불교계의 참여가 상당히 크고 남베트남 [[응오딘디엠]] 대통령 가문과 측근들의 가톨릭이란 공공의 적이 있어 대충 직접적인 체제 비판은 하지 않는 선에서 불교계와 적당히 타협을 봤고 [[라오스]]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그나마 이웃 베트남과 비교해도 기본적인 식민지적 개발 자체도 너무 안 되어 공산주의고 나발이고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기본적으로 실무 관료를 할 수 있는 식자층 자체가 여전히 [[상좌부 불교]] 승려들뿐인지라 되려 공산 정권이 불교계를 적극 포섭한 사례도 있다. 중남미도 20세기 초중반에는 [[멕시코 혁명]] 이후 혁명 정부가 반동적인 가톨릭계 상대로 크리스테로 전쟁이란 거대한 무장 반란까지 겪으면서 반종교 기조를 유지했지만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종교계와 가까워지는 성향을 보인다. 중남미는 원래 식민지 시절부터 식민 당국, 유럽계 백인 정착자들 상대로 원주민이나 탈주 노예들의 권익을 옹호하던 반체제 사제 집단의 전통도 강한지라 성직자들이 오히려 급진 좌익 혁명 운동에 투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20세기 후반엔 [[해방 신학]]이란 조류도 생기면서 연대의 여지도 더 커졌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만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정치적 도전만 없으면 가톨릭계와 딱히 대립각을 새우지 않았으며 특히 카스트로 말년에는 혁신적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적극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였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이나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도 해방 신학계 쪽으로 가톨릭계를 포섭하려는 태도가 일반적이었다. 특히 21세기 들어와선 중남미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주로 [[친미]] 우파 성향 복음주의 개신교란 공적을 상대로 점점 더 중남미 좌파와 가톨릭계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듯한 모양새다. 하여튼 이러한 [[국가 무신론]]의 종교 박해 정책에 대해서 세속주의-좌파 진영 입장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전]]이 터지는 와중에 하느님의 복음으로 전쟁 이겨야 한다고 수입산 고급 촛대를 찾던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들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을 비교하며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눈이 찢어진 아시아인들이라 멸시당하던 러시아를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전 세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피식민지 지식인들이 유학 오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지적했듯이 소련의 검열은 정교회 근본주의 나라였던 러시아 제국 시절보다 훨씬 더 빡빡했다는 반론도 있다. [[동유럽 혁명]]과 [[소련 해체]] 이후로도 중국은 여전히 종교를 강렬하게 탄압하고 있는데 이것은 [[국가 무신론]]이라는 이념적 이유와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세력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가 혼재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유구한 전통인 민간 종교 조직이 반란군화되는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허나 중국 정부에 의해 탄압받는 종교 조직들이 대부분 [[사이비 종교]]에 가깝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현재 중국에서 통제받고 탄압받는 종교 조직들은 이슬람과 가톨릭,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 계열과 티베트 등지에서 믿는 불교 계열인데 이들은 딱히 중국 정부에 반기를 든 적도 없고 사건 사고를 일으킨 적도 드물다. 특히 중국의 이슬람 탄압은 악랄하기로 유명한데 이슬람 학자들을 대대적으로 감금하거나 살해하는 것은 물론 [[신장 재교육 캠프]]를 만들어서 신장 지역의 이슬람 교세를 현재 진행형으로 말살하려고 들고 있다. 이는 종교적인 이유보다 민족 말살이라는 목적이 더 크지만 위구르족의 민족성에서 유독 이슬람을 집중적으로 탄압하기 때문에 종교 탄압이 아니라고 볼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딱히 테러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대부분 차별만을 반대하고 중국에 충성하는 시민들인데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수감하고 탄압하는 중이다. 극소수의 극단주의 일파가 [[쿤밍역 칼부림 사건]] 등의 테러를 일으키고 이를 명목으로 중국 정부의 이슬람 말살 정책을 정당화하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기는 한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
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 BY-NC-SA 2.0 KR
또는
기타 라이선스 (문서에 명시된 경우)
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216.73.216.107)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사용자
216.73.216.107
IP 사용자
로그인
회원가입
최근 변경
[불러오는 중...]
최근 토론
[불러오는 중...]